낙서하는 호호아줌마/잡담

2015.6.10 프랑수아 플로르의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을 읽고

날카로운 호저 2015. 6. 10. 14:43



영화 '꾸뻬 씨의 행복여행' 중 한 장면




오랜만에 블로그에 독서 리뷰를 쓰려니 익숙하지 않다.



나에게 참 오랜만의 '끝까지 읽은 책'이다. 즘 많은 시간 손에 모바일을 쥐고 있다보니, 이미지와 단문의 메시지가 아니면 문장을 제대로 다 읽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쫓기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서관이나 서점에서 책을 들어올릴 때는 재미가 없거나 '지적 수확'이 없어 비효율적일까봐 선뜻 아무 책이나 들어올리지 못했다. 그렇게 많은 책을 시작하지 못했고, 이전에 구입해서 읽다 말았던 책들을 펼쳐보고, 닫는 행위의 반복이 지속됐다.



1년 남짓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내 나이에도 내 적성에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시험을 치렀다. 그 시험이 '취직'이 아니라 다른 이유였다면 모를까. 프랑수아 를로르의 이 책은 내가 산 책이 아니다. 남편이 이 집에 가져온 책이다.



신혼집을 차릴 때, 남편과 나는 각자의 책을 가져와 한 책장을 꾸몄다. 누군가 그랬었는데.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내가 읽은 책, 내가 좋아하는 책들로 가득 찬 책장은 익숙하고 아늑한 느낌이었는데 다른 사람의 책과 함께 끼워져 있는 내 책들. 그렇게 섞여있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그리고 '이게 결혼의 의미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그의 책과 나의 책이 구분 없이 뒤죽박죽 섞여 있듯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우리의 생각과 생활방식도 섞여 하나의 책장으로 융합되는 것 같다.




영화 '꾸뻬 씨의 행복여행' 중 한 장면




책은 쉬웠다. 문장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는 내가 끝까지 읽을 수 있도록 문장구조는 복잡하지 않았고 친절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행복에 대해서 정말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책의 표지에는 '모든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행복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정말 신기하다. 많은 사람들과 작가들은 여행과 인생을 일치시킨다. 시작과 여정, 끝이 있다는 공통점에서 이러한 비유는 가능한 것 같다. 전경린의 책이었던가. '인생이 여행이라면, 생활은 짐 가방이다'라는 문구가 기억난다.

 


이 책은 유명해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읽었을 거다. 그래서 줄거리를 늘어놓는 것은 그닥 좋지 않을 것 같다.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꾸뻬 씨가 죽은 쥐 냄새가 나는 작은 벽장 안에 갇혀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 부분이다.



'꾸뻬는 죽음이 그렇게 무섭지만은 않았다. 무엇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을 하면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만일 지금 죽는다고 해도 이미 좋은 삶을 살았다고.'

(이 문장의 뒷부분에 이어지는 꾸뻬 씨가 열거하는 자신의 인생은 좀 부럽다) 



한편으로는 누구나 삶의 끝에 도달하면 '난 좋은 삶을 살았어'라는 결론을 내릴까 궁금하기도 하다. 

인생과 죽음 모두 허무하니까 자위하는 그런 결론이라도 내려야 하는 순간일까? 인생은 충분히 그 자체로도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공감이 간다.



행복의 첫번째 비밀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지 않는 것'은 알고 있는 것이지만, 매사 노력이 필요한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인생엔 이렇다 할 어떠한 기준이 없다. 비슷한 상대방과 자신을 비교하며 그 기준을 찾는 거다. 그 과정에서 슬프고, 힘들고,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




영화 '꾸뻬 씨의 행복여행' 중 한 장면




'자밀라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있어 행복은 자신의 나라가 평화롭고 잘 사는 나라가 되는 것, 또한 자신의 남동생들이 컸을 때 전쟁터에 죽으러 가지 않는 것, 그녀의 또 다른 여동생에게 좋은 남편과 아이들이 생기고 그 아이들이 안심하고 학교에 갈 수 있는 것과 방학을 갖는 것, 그리고 장차 그 아이들이 커서 의사나 변호사, 숲을 지키는 사람, 또는 예술가, 아니면 아이들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난 자밀라의 '행복'의 기준에 동의한다. 개인의 삶이 중요해진 요즘이지만, 국가라는 테두리를 무시할 수만은 없다. 국가원수의 잘못된 판단과 국방의 의무 때문에 우리는 언제든지 전쟁터에 죽으러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생에서 방학, 휴식을 갖는 것도, 아이들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에 동감했다.